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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ㅣ강성호 교사

MBC충북 뉴스 | 2021.06.21 09:52 | 조회 624 | 좋아요좋아요 84


인터뷰 날짜 2021.6.8.

1989년 '6.25 북침설 교육 조작 사건'에 휘말려 교단을 떠나야 했던 강성호 교사, 20년이 지난 1999년 복직했지만 국가보안법 유죄라는 꼬리표는 여전히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신청한 재심 결심 공판이 오늘(6.10) 청주지방법원에서 있었는데 검찰은 여전히 30여 년 전 구형을 반복했습니다.

MBC충북 이채연 기자가 오는 8월 12일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는 청주 상당고등학교의 강성호 교사를 만나 사건의 경위와 그 동안의 진행 상황, 그리고 소회를 들어 봤습니다.


< 교사 부임에서 '미군 북침설 교육 조작 사건'으로 체포되기까지 >

이채연: 회고해 보면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때 그 시절이라고 하면 노태우 정권 시절이죠. 분위기가 어떤 상황에서 처음 교편을 잡으신 거예요?

강성호: 89년 3월 당시 저는 충북 제천에 있는 제원고등학교 갓 발령을 받은 두 달밖에 안 된 초임 교사였습니다. 당시 학교 분위기는 교사의 수업 내용을 철저하게 감시를 했어요. 감시하는 내용이 학생들을 이용해서 학생들에게 지정을 해서 아무개 아무개 선생님 수업 내용이 무엇인가를 하나 하나 다 보고했던 거죠. 저희 같은 경우 외부에서 전화조차 못 걸었어요. 외부에서 전화오면 전화도 전부 녹취를 다 했어요. 심지어는 주말에 제가 어디로 가는지, 누굴 만나는지를 당시 교장 교감 선생님들이 다 확인해서 어딘가에 보고하는 분위기였어요.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분위기였죠. 실제로 당시 문교부가 교사들을 감시하라고 공문을 보냈어요. 상상도 못한 일이 그 당시는 벌어졌던 거예요.

이채연: 정부가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세요?

강성호: 그렇게 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죠. 당시 1989년에는 교사들이 학교 교육 민주화를 위해서, 또 입시제도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서 자주적인 교원 노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노조를 결성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전국에 걸쳐 있었어요. 그런 움직임을 막기 위해서 방법을 동원했던 거였죠.

이채연: 32년 초임교사 시절에 일본어 교사셨는데 수업 시간에 갑자기 체포되는 일을 겪으셨어요. 당시 상황 좀 설명해 주세요.

강성호: 초임교사로서 학교에서 아이들 앞에 섰을 때 다짐을 한 가지 했어요. 존경받는 교사는 못될지언정,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고 싶다고. 당시 학교에서 이른바 ‘자율 학습비‘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었어요. 그 돈을 걷어서 어디에 쓰는지, 어떻게 쓰는지를 공개를 안 했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이 문제제기를 했는데 제가 그 부분에 대해서 교장선생님한테 건의를 한 적이 있어요. 그것이 교장선생님 입장에서는 초임교사가 학교 운영에 도전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그때부터 학교 운영에 대해 건의했는데 그런 것들이 교장선생님 입장에서 불쾌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게 아마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실제로 그랬었다고 나중에 얘기 했어요.

이채연: 뭔가 쓴 소리 하는 교사로 찍혀있던 거네요.

강성호 : 그런 셈이죠.

이채연: 수업내용이 뭐였길래 연행되신거예요?

강성호: 초임 교사이기 때문에 제 교과목 수업을 어떻게 하면 학생들과 재미있고, 또 의미있게 해볼까 고민했어요. 일본 후지산 사진과 그 당시에 한겨레 신문이 연재했던 '보고 싶은 북녘 땅'이라는 사진첩을 제가 갖고 있었어요. 서점에 파는 거였어요. 그래서 후지산 사진과 백두산 사진 같이 보여주면서 어느 쪽이 아름답냐, 더 높으냐, 어디를 가고 싶으냐 하면서 북녘산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외국 사진작가는 가서 사진도 찍고 그러는데 같은 민족인 우리는 못 가보고 있어서 얼마나 안타까우냐, 통일 되면 금강산 수학여행 가 보고 백두산 신혼여행 가 봐야되지 않겠냐, 그런이야기를 하면서 수업을 진행했죠. 근데 그 수업 한 달이나 지난 후에 갑자기 북침설 교육으로 둔갑돼서 제가 경찰서로 끌려간 거였어요.

끌려가기 전까지도 저는 전혀 짐작을 못 했습니다. 저로서도 정말 믿겨지지가 않았어요. 수업시간 도중에 교장실로 잠깐 좀 와라. 수업 중인데 잠깐만 오라고, 급한 일 있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갔죠. 갔더니 낯선 두 명의 남자가 절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교장 선생님도 계시고. 근데 그 분이 강성호 교사냐고 확인하더니 다른 얘긴 안해요. 잠깐 경찰서에 좀 갈 일이 생겼다고. 경찰서에 왜 갑니까 했더니 잠깐이면 된대요. 그리고 또 학생 사안으로 조사할 게 있다는 거예요. 교사니까 학생 사안이 있으면 협조해야죠, 교장선생님한테 여쭤봤죠. 제가 잠깐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그랬더니 교장선생님이 그러라고 하셨어요. 근데 사실은 교장선생님이 저를 국가보안법으로 고발을 했던 거였어요.

이채연: 교장 선생님도 그럼 수업내용을 다 듣고 있었던 건가요?

강성호: 물론이죠. 수업시간에 제가 무슨 수업 하는지를 감시한 것 같아요. 각 반 실장을 불러서 강성호 선생님이 무슨 내용으로 수업을 하는지 일일이 보고하라고 실제 지시를 내렸다고 학생들이 증언했어요.

이채연: 제천경찰서로 동행한 이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강성호: 갔더니 대공과였어요. 그때 수갑을 채우더라고요. 당연히 제가 왜그러냐 했더니 이유가 없어요. 지금처럼 뭐 미란다 원칙 고지한다든지 체포영장 제시한다든지 그런 절차가 전혀 없었죠. 그러니 불법 영역이죠. 저는 완력에 이끌려 갔는데 장소가 대공과였어요.

내가 왜 여기 들어왔느냐고 왜 수갑을 채웠냐고 물었더니, 당시 형사가 조서에도 나와 있습니다만, 당신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혐의입니까? 물으니까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6.25가 북침이라고 가르쳤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애기를 처음으로 하더라고요. 제가 웃었죠. 누가 그런 이야길 하덥니까? 하니, 학생들이 그런 얘길 들었다고 증언했다는 거에요. 그럴 리가 없다고 제가 부정했죠. 그러면서 자술서 쓰라고 인정하라고. 저는 인정 못 한다 했고요.

실랑이가 벌어지는 사이에 시간 흘러서 밤 9시 MBC뉴스 데스크 보니까 엄기영 앵커가 제 사건을 보도하더라고요. "전교조 결정 앞두고 지금 학교 현장에는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운데 오늘은 전교조 결성에 관련된 교사가 6.25가 북침이란 수업을 했다는 이유로 구속이 되었다" 바로 제 이야기였어요.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계속 부정하니까 학생들을 지금 불렀으니 애들하고 만나게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정신이 아득했죠. 학생들을 경찰서에서 만난다는 것은 이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인데, 그런 건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경찰 입장에서는 제가 부인하니까 대질심문을 한 거죠. 결국 제자들을 경찰서 대공과에서 만나게 됐어요.

이채연: 제자를 대공과에서 대면하시게 됐다고요?

강성호: 네, 지금도 가슴이 아파요. 제자들이 믿기지 않는 말을 또 했어요. 여기 기록에 있는데 3명의 학생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그대로 기록에 나와 있어요. 89년 5월 25일 새벽, 아, 참 지금도 이 기록보니까 마음이 아프네요. 그 당시 학생 한 명이 이런 얘길 해요. 강 선생이 6.25 북침이라는 수업 안 했다고 계속 얘기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김 아무개 학생이 이렇게 얘길 했다‘고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제자가 선생님에 대하여 어떻게 감히 경찰서에 와서까지 거짓말 하겠습니까? 강 선생님은 분명히 6.25는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고 말했고, 사진을 보여주면서 북한은 여러분이 사는 것보다 잘 살고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라고 제자가 제 앞에서 진술했거든요.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들은 대로 이야기 하는데, 왜 선생님은 그런 말을 한 사실 없다고 부인만 하십니까라고도 적혀 있어요. ‘이구동성 반문하다’ , 이구동성이 아니고 달려 들었어요, 저한테 새벽 시간에. 저한테 대공과에서 대질심문하던 제자들이 저한테 달려 들었어요. 선생님 왜 그렇게 거짓말하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저는 비참했습니다. 아니 불과 몇시간 전에 교실에서 만났던 제자들이 대공과에서 저한테 이렇게 간첩이라고 했던 거죠. 그런데 제가 그 아이들을 몰아부칠 수 없지 않습니까? 제 제자들인데요. 그게 사실 가장 힘들고 아픈 기억으로 지금도 남아 있어요. 거짓이 아니라는 걸 밝혀야 되는 것이 제자들을 몰아 부쳐야 되는 그 현실이 가장 힘들었죠, 결국 저는 못 했습니다. 경찰이 "학생들은 수고했다" 그러고는 집으로 보내고, 저는 다시 유치장 독방에 가뒀어요. 그 기억이 지금도 여전히 저를 아프게 해요.

이채연: 그 뒤에 어떤 어려움을 겪으셨나요?

강성호: 저는 수업을 하다가 잠시 경찰서 가자는 이야기 듣고 그냥 끌려간 거였어요. 그런데 어떤 법적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죠. 바로 수갑이 채워지면서 외부와 단절된 상태였기 때문에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전혀 알지 못했죠. 그런데 TV에는 내 이야기가 뉴스로 나오고. 형사들이 저한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당신이 부정해도 소용없다고.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몰려 들어가 좌경 용공교사 처단하라고 요구했다는 기록에 남아 있어요. 학부모들이 교육청에서 어떤 얘기 했는지가 나와 있는데, 당시 학부모들이 제천교육청 앞에서 좌경의식화 교사 강성호를 비롯한 교사들을 본교에서 추방하지 않으면 학생을 등교시키지 않을 것을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고 나와있어요. 좌경의식화 교사 물러가라, 자녀들을 맡길 수가 없다, 좌경 의식화 교사를 처단하라예요. 목을 쳐라 이말이죠. 이미 저는 간첩이 되었고 빨갱이 교사가 된 거였어요. 재판도 하기 전에.

잊혀지지 않죠. 하루아침에 교사에서 간첩이 된 거 아니겠습니까. 제 손엔 분필 뭍은 흔적이 그대로 있는데 그 손에 지금 수갑이 채워져 있는 거였어요. 잊혀지지 않죠, 잊을수가 없어요.

<국가보안법 유죄 판결부터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까지 >

이채연: 검찰에서는 회유를 받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강성호: 경찰이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심문 조서를 검찰로 넘겼고, 검찰에서 또 조사를 받았아요. 똑같은 조사를 되풀이 했죠. 또 제자를 만나고 저는 부인하고, 검찰에서는 저를 압박하고. 사실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 앞에서 검사가 얘길 했어요. 솔직히 북침설 수업했다고 인정을 하면 풀어줄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단호히 거절했죠. 거절하면서 무슨 얘길 했냐면 저는 교사입니다. 학생들에게 거짓을 가르치지 않기로 다짐한 교사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어떻게 거짓말을 합니까? 그랬더니 검사가 표정이 바뀌면서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만 이렇게 하더라고요. 결국 그 검사는 저에게 실형을 구형했죠. 그게 제천지원이었어요.

구속된 상태에서 검찰로 넘어가서 검찰 조사를 받고, 같은 해 10월 7일 날 제천지방법원에서 진행된 1심에서 실형을 받았어요. 풀려난 게 아니고, 징역 1년을 받았어요. 실형 받은 뒤 청주교도소로 이감돼 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했어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제가 항소를 했기 때문에 청주지방법원에서 2심이 진행 중이었어요.

이채연: 2심 결과는 어땠나요?

강성호: 1990년 1월 25일 청주지방법원에서 열린 2심에서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받고 석방됐어요. 8개월 동안 수감생활 한 뒤 석방이 됐는데 여전히 유죄죠. 집행유예는 무죄가 아니지 않습니까.

대법원에 상고했죠. 그런데 대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했어요. 2심 판결이 확정된 거죠. 유죄가 확정됐으니까, 당연히 교직을 수행할 수 없어서 학교 교사로서 역할을 못 하게 된 거였어요. 구속될 때부터 이미 그랬습니다만 국가보안법 유죄 확정 판결 받았기 때문에 94년 전교조 관련 해직 교사들이 복직할 때도 저는 복직 대상자에서 제외 시켰더라고요. 그 국가보안법 유죄확정 판결 받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복직할 수 없어서 10년 4개월 정도 학교 밖에 있어야 했어요.

이채연: 재판 과정에서 심적 고통이 크셨을 것 같아요. 제자들이 선생님은 무죄라고 탄원서를 냈다고 들었어요

강성호: 학생들도 색이 다 다르잖아요. 학생들이 탄원서를 썼어요. 369명인가 그래요. 탄원서 보면 여러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만 내용이 이렇게 돼 있어요. 제가 6.25북침설을 가르쳤다고 증언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결석했다. 그들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나머지 애들은 안 들었는데 어떻게 그 학생들만 들었는지 우리는 이해를 할 수 없다고. 알고 봤더니 그 애들이 그 수업시간에 결석했던 사실이 학생들 탄원서 통해 밝혀진 거였어요.

저는 기억 못했죠. 왜냐하면 한 반에 7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제 수업 시간에 결석했는 지 아닌 지 알 수 없었어요. 초임이기 때문에 더군다나 1주일에 한 시간 수업했기 때문에.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학생들이 증언하고 탄원서 쓰고 그랬는데, 당연히 무죄가 돼야 하잖아요? 근데 검찰이나, 심지어는 재판부조차도 이런 증거를 전혀 채택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도저히 이해를 못했죠.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재판에서 방청했던 많은 분들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냐고 통탄했어요.

아니, 수업시간에 결석한 학생들이 그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6.25가 북침이다 북한이 잘 산다고 가르쳤다고 증언을 했는데 그 학생들이 정작 수업시간에 결석한 거에요. 출석부에도 다 나와 있는데 근데 그걸 유죄증거로 채택했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죠.

이채연: 북침설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던 학생들은 재판에서도 똑같은 증언을 했나요?

강성호: 네. 웃을 수밖에 없는데 그게 바로 32년 전 대한민국의 현실이었어요, 대한민국의 사법부였고 경찰 검찰이 그랬습니다.

이채연: 돌이켜보면 그 학생들이 왜 그랬다고 생각하세요?

강성호: 그 점이 가장 안타까운 거예요. 왜 학생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제자들이 30년이 지난 후에 동기생들과 주고 받았던 카톡에 보면 다 있어요. 증거로도 제출됐어요. 그 당시 이야기했던 제자가 자기 동기생들과 주고받았던 카톡 내용을 제가 이번 재심 재판 과정에 증거로 제출했는데, 그 내용 보면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가 많아요.

왜 그랬을까. 그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결석했는데도 6.25가 북침이라고 들었다고 얘길 했을까. 그건 학생들이 학교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었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요. 제자들을 미워할 수가 없죠. 오히려 그 학생들도 같은 피해자이고 희생양이었어요. 안타까운 건 제자 중 한 명은 나중에 30년 지난 친구에게 보낸 카톡에 보니까 그때 너무 힘들어서 자살을 시도했다고 썼더라고요. 이건 정말 너무 반인륜적인거 아닙니까? 그런데 시키는 대로 경찰에서 검찰에서 법정에서 하지 않으면 졸업을 못 할 줄 알아라, 어떻게 했을 거 같습니까. 그 학생들 결국 제가 대질심문하면서 법정에서 만났을 때 제 얼굴 한 번도 제대로 못 보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분노했어요. 어떻게 학교에서 제자들을 이용해서 스승을 간첩이라고 6.25가 북침이라 가르쳤다고 사건을 만들 수 있을까.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실을 밝혀야 됩니다. 제자들이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반 인륜적인 사건을 만들었던 그 당시 정권, 또 이런 사건을 조사하는데 앞장섰던 그 당시 교장과 교감, 지금도 살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언론 통해서 알게 된다면 사과해야 합니다. 저한테가 아니라 제 제자들한테. 지금도 제 앞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제 제자들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이채연: 지금은 사면 복권되신 상태죠?

강성호: 사면, 복권도 다 됐죠. 김영삼 정부때 사면 복권은 다 됐고요. 민주화유공자로서 인정도 다 받았습니다.

99년 9월에 복직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또 그런 얘길 하시더라고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 받았는데 어떻게 학교에 복직 했습니까? 라고 질문 하시더라고요. 1999년은 김영삼 대통령에서 김대중 대통령으로 정권 교체가 됐죠. 아마 우리나라 최초로 국민들의 손으로 정권 교체를 이룬 정부인데, 그만큼 민주화가 이뤄졌단 뜻이겠죠. 그래서 민주화가 이뤄진 여건 소속에서 군부독재정권에서 일어났던 불행한 역사를 다시 한 번 재평가하는 차원에서 저를 복직시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구속된 이후 10년 4개월은 제 교직 경력에서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다시 초임교사죠. 저는 그래서 초임 교사로서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학생들과 나름 열심히 교직 생활에 최선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골에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복직하면서 충북 영동 농공고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채연: 재심을 신청해야겠다는 결심은 언제 하셨나요?

강성호: 복직한 뒤로 영동고, 청주공고, 제천여고, 청주여고 몇 군데 학교 돌면서 언젠가 재심을 신청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여건을 보니까 2019년에 재심을 신청해도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그 당시 검찰에서 과거 군부독재정권에서 있었던 공안조작사건에 대해 먼저 재심을 하겠는 발표 기사를 읽어 봤거든요, 그래서 검찰에서 과거공안사건 재심을 시작하겠다? 그럼 저도 한 번 해봐야겠다 해서 신청을 했죠.

이채연: 2019년 11월, 법원이 재심을 결정한 사유는 뭐였나요?

강성호: 지금 재심 사유서에 들어 있지 않습니까. 재심 사유서 보면 그대로 나와 있어요. 재심 사유 간단해요. 여기보면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고 그러한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형사소송법에 정한 재심 사유가 있다 그래서 재심개시를 결정한다라고 되어 있어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89년 5월 24일 오전 11시 반, 점심 무렵에 수업하다가 교장실로 가서 연행됐다 하지 않았습니까. 31시간 동안 제천경찰서 대공과에서 구금당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모든 과정에 불법 연행, 불법 체포, 강제 구금이라는 거죠. 그것이 형사 소송법상 범죄라는 거죠. 그게 재심 사유예요. 우리나라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고요.

이채연: 지난 1년 5개월의 재심 과정도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요.

강성호: 힘들었죠, 재심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 자체가. 검찰에서도 과거 사건에 문제가 있다라는 건 일정 부분 인정을 했기 때문에 재심이 받아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쉽게 끝나리라 생각했는데 1년 5개월이 진행됐어요. 그 과정에서 사실 힘들었어요. 힘들었던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32년 전 사건을 다시 되짚어야 되는데 그 과정에 32년 전 제자와 만났던 아픈 기억들을 하나하나 다 되짚어야 했고, 제자들이 거짓 증언을 했다는 걸 반박해야하는 일을 되풀이해야 되기 때문에 그것이 저로서는 너무 가슴 아팠아요. 32년 전 세월 다시 거슬러서 그 시대에 겪었던 아픔을 똑같이 반복해야 했죠.

재심 과정에서 포기하고 싶었어요. 꼭 이렇게 까지 해야되나? 왜 내가 이런 아픔을 또 겪어야 하지. 한편으로는 아니지, 89년 5월 24일 경찰서 유치장에서 혼자서 결심한 게 있었거든요. 제자와 스승을 이렇게 국가보안법이란 잣대로 이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준 이 현실을 반드시 바꿔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을 밝혀야겠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죽지 않는다면 반드시 이건 바꾸어야겠다. 그래야 제자들에게도 아픔과 상처가 있을텐데 그걸 조금이라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그 다짐을 되뇌어보니까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힘들지만 재심하면서 다시 한 번 다짐을 하면서 버텨왔던 그런 시간이었어요.

이채연: 사법부에 거는 기대가 있으신가요?

강성호: 최근에 서초우체국 사서함에서 온 자료가 있어요. 국가정보원에서 온 자료예요. 제가 정보공개청구를 했었요. 왜 그렇게 구속 당해야했는지, 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아야 했는지, 그 사건이 어떻게 일어난건 지 알고싶다. 나와 관련된 32년 전 기록이 있으면 공개하라고 했더니 부분공개라는 이름으로 저한테 보내온 자료예요. 자료 보니까 이렇게 적혀 있네요. 그 당시 국정원은 안기부였죠. 안기부에서 만든 자료예요. 89년 이야기입니다. 문교부에서는 교사들이 표방하고 있는 참교육은 좌익 성향의 민중교육론이어서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부정하는 그릇된 의식화 교육임을 부각 홍보하라, 안기부에서 그 당시 문교부에 내려 보낸 지침이에요. 제가 빨갱이란 거죠. 큰 국가 폭력 속에서 이뤄졌던 거죠. 국가권력이 총 동원된 국가폭력, 언론에서 충실하게 보도했거든요.

이건 2021년 현실에서 되돌아 볼 때 인권의 문제이고, 또 우리 사회의 상식과 정의와 관련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반드시 밝혀야겠다, 그리고 이 부분을 밝히는 것이야 말로 우리 대한민국이 30년 전 그런 야망과 광기라고 표현하고 싶은데요, 야만과 광기가 지배하던 시절로 되돌아가면 안 되겠다는 그런 하나의 징표로 남기고 싶기 때문에 제가 재심을 진행했습니다. 재심의 결과는 사법부의 판단을 따르겠습니다만 아마 사법부도 야만과 광기의 시대가 어땠다는 건 역사적으로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이른바 사법 농단, 당사자들이 지금도 재판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 보다 훨씬 전 이야기잖아요. 이제는 사법부가 국민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결과를 내놓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채연: 최종 선고는 어떻게 전망하세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도 덧붙여 주세요.

강성호: 사실은 제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죠. 아까 말씀드렸듯이 제자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보안법이 정말 우리가 민주사회로 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라 생각하고요.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저와 같은 비극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불과 일년 전에 박미자 선생님이 북한에서 가져온 동화책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됐잖아요. 북한에서는 봉이 김선달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궁금해서 책을 가져왔던 거예요.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됐다고요? 절대 아닙니다. 불과 10여 일 전에도 국민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입법 청원을 국회에 하지 않습니까. 청주에서도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연행된 3분이 있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가 무죄를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국가보안법, 우리 민족의 장래를 가로막고 민주사회 근간을 부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없어져야 된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기 위해 제 나름대로 자그마한 힘이라도 모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죠.

학생들에게 얘기하고 싶어요. 재심과정에서도 참 많은 아픔이 있었는데 시간 있을 때마다 그 학생들 미워하지 않는다, 그 애들도 희생양이다 얘기했습니다만 무죄 판결 받는다면 그 학생들이 조금 마음이 덜 무겁지 않을까, 그런 바람을 갖고 있죠. 재심 과정에서 학생들도 처음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자신들이 한 증언 때문에 선생님이 8개월 감옥가고 10년이란 세월을 학교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가슴 아팠겠습니까. 재심에서 무죄가 내려진다면 제자들이그 소식을 듣고 이제는 좀 마음 편안해졌으면 좋겠어요.선생님은 여전히 너희들을 내 제자로 생각한다, 이제 마음의 짐을 덜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이야기 꼭 해주고 싶어요.

(인터뷰: 이채연 기자, 정리: 신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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